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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중국인들 만주서 한국인 무차별 학살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무수한 한인들이 만주에서 중국인들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 중국 군부가 일제의 사주를 받아 한인들을 무더기로 붙잡아 조선총독부에 넘겨 사형이나 고문·투옥을 당하도록 했다. 중국공산당이 항일투쟁을 벌이던 한인 공산당원들에게 일제 부역자라는 얼토당토않은 누명을 씌워 대거 처형하기도 했다. 이념의 좌우를 막론하고 중화주의 유전자가 뼛속 깊이 박힌 중국인들이 한인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가볍게 여긴 결과다. 일제 강점기 재중 한인 사냥은 만주 군벌 장쭤린(1875~1928년)에서 시작됐다. 장쭤린의 부하들은 1925년 6월 조선총독부의 미쓰야 경무국장과 한국인 단속 협약(일명 미쓰야협약)을 맺어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미쓰야협약 내용은 한인 호구 조사, 무기 휴대자의 ..
중국 6.25 침략을 정의로운 ‘항미원조’로 날조 중국은 한국전 참전을 침략자 미국에 맞서 싸운 ‘정의의 전쟁’(항미원조전쟁)이라고 선전한다. 김일성이 중국·소련의 지원 약속을 받아 남침한 사실이 비밀문서 공개로 밝혀졌음에도 중국은 그릇된 역사관을 수정하기는커녕 되레 강화하고 있다. 한국전쟁 70주년인 2020년에는 중공군의 활약상을 부풀려 홍보하는 영화와 드라마를 잇따라 상영함으로써 사회주의 우월성과 애국사상을 고취했다. 방탄소년단(BTS)이 ‘밴 플리트 상’ 수상 소감에서 한국전쟁 70주년을 언급했을 때는 중국 네티즌이 벌떼공격을 퍼부었다. 항미원조 전쟁 70주년의 고귀한 정신을 모욕했다는 이유에서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참전 70주년 기념대회에서 6.25전쟁을 항미원조라고 스스럼없이 날조했다. 항미원조는 제국주의 침략 확장을 억제한 것은 물론, 중국..
중국은 2차대전 끝자락에 한반도 지배야욕을 재점화했다. 중국은 청일전쟁(1894~1895년) 패배로 조선이 속국체제에서 풀려났음에도 한반도 지배 야욕을 버리지 않았다. 중국은 조선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과 한동안 공존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종주권을 회복할 기회를 엿봤다. 잇따른 전쟁 패배와 열강의 경제침탈로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탓에 예전처럼 주먹을 마구 휘두를 처지는 아니었다. 온순해진 듯했던 중국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반기에 연합군이 승기를 잡자 중국은 한동안 감췄던 표독한 이빨과 발톱을 조선을 향해 다시 드러냈다. 사냥 방식은 과거보다 훨씬 세련되고 교활해졌다. 좀비 상태에서 간신히 원기를 회복한 데다 한반도로 남하하던 소련이 경쟁 사냥꾼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자국에서 활동하던 대한민국 광복군을 지원..